저에게 '탁월함'이란 그 일에 얼마만큼 시간을 쓸 수 있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무리해서 일을 맡지 않습니다. 그래도 "NO"라고 말하면서 속상할 때가 많아요. 아쉬운 마음이 들어 힘들 때는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중에 하자'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습니다.
Q. 무슨 일 하세요?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컴퓨터과학과에서 부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보안·알고리즘·자바 프로그래밍·네트워크 등을 가르치고, 연구 프로젝트도 하며 학생들 진로상담도 합니다.
Q.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일과가 많이 달라졌어요. 코로나 이전에는 아침에 일어나 큰 아이의 도시락을 싸고, 먼저 가족들 아침식사를 챙겼어요. 그리고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죠. 제 직장인 학교가 저희 집에서 편도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일주일 중 3일은 출근하고, 2일은 재택근무를 했습니다. 출근하는 날은 밤 9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는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6시30분까지 제가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나머지 시간에는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이 아이들을 책임집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평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고, 아침 8시쯤 일어나요. 퇴근 후 저녁 시간부터 이른 새벽까지 남편이 아이들을 담당하기 때문이죠. 남편이 쉬는 주말에는 낮에도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Q. 아이를 낳기 전과 후, 커리어에 특별한 변화가 있었나요?
결혼 전에는 1년에 비행 마일리지가 6만마일 정도 쌓일 정도로 해외를 자주 오갔어요. 보통 한국과 미국을 왕복하면 1만1000마일 정도의 마일리지가 쌓이니 그만큼 출장을 많이 다닌 셈이죠. 아이를 낳은 뒤로는 출장을 최대한 가지 않고 있습니다. 학회나 초청 강연 같은 것도 거의 못하고 있죠. 어쩌다 하게 되더라도, 짧은 시간에 미팅과 강연을 몰아서 끝마친 뒤 집으로 빨리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건 온전히 아이들 때문에 생긴 변화는 아니에요. 연구 중심으로 이루어진 학교에 있다가, 수업 중심인 현재의 학교로 이직하며 생긴 변화이기도 합니다.

윗필드 디피(Whitfield Diffie)라는 암호학에서 유명한 학자 분과 찍은 사진입니다. 비대칭 암호화 키(열쇠) 알고리즘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신 분이라 제게 열쇠를 주는 장난을 치고 계신 모습입니다. :) ⓒ정은진
Q. 아이를 키우고 일하면서 언제 가장 힘들었나요?
아이를 키우는 삶은 언제, 얼마나 바빠질지 예측할 수가 없어서 어렵습니다. '오늘은 밤을 새워서라도, 마감을 맞춰 일하겠다!'고 생각한 밤에 갑자기 아이에게 열이 나는 등의 일시적인 문제도 있고요. 아이의 학교 배정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데 드는 시간이 달라지는 등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도 있죠.
각 상황마다 돌파했던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생각을 가지고 일과 육아를 병행했어요.
1. 꼭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 (남편과 도우미도 아픈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다)
2.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 (이번 마감을 맞추지 못해도, 다음 달에 다른 학회지에 논문을 제출해 볼 수 있다)
3. 다른 사람에게 조금 미안해져도 괜찮다. (필요할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부탁하는 게 미안할 일이 아니고, 조금 폐를 끼쳐도 괜찮다)
저는 위의 세 가지 주문을 되뇌며 여태껏 상황들을 지나왔고, 지금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Q.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동료, 후배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내가 하면 더 빨리 할 수 있는데, 내가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일도, 배우자나 남에게 맡기는 걸 고려해보세요. 물론 직접 하면 더 빨리, 잘 할 수 있겠지만 일하는 엄마에게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엄마의 시간 중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나 '내 일에 투자하는 시간'은 아웃소싱을 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니, 그 밖의 일 중에서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아무리 내가 잘하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죠.
남에게 일을 맡길 때는 첫 술에 배불러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세요. 마치 결혼할 사람을 찾는 것처럼 심사숙고한다고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처음 사귄 이성친구와 마음이 맞지 않으면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사귀게 되잖아요. 연애를 많이 해봐야 내가 어떤 사람과 맞는지 알 수 있고요. 남에게 일을 맡기는 것도 똑같아요. 처음부터 너무 완벽한 사람을 고르려고 하기보다는 적당히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마음에 맞지 않는 부분은 소통해서 개선해 나가기를 추천해요. 만약 이야기를 해도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때 다른 사람을 구하면 됩니다.
Q. 일을 더욱 탁월하게 잘 해내기 위한 은진님만의 노력이 있을까요?
체력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5일 이상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탁월함'이란 그 일에 얼마만큼 시간을 쓸 수 있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무리해서 일을 맡지 않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저에게 주어지는 모든 기회에 "YES!"라고 외치고 싶어요. 하지만 그랬다가는 진행 중인 일을 중간에 그만둬야 하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을 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생각하며 다음 기회를 기약하죠. 하지만 "NO"라고 말하면서 속상할 때가 많아요. 일을 거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 힘들 때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중에 하자’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을 맡는 게 나에게 무리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 일을 탁월하게 잘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는 게 중요해요. 이건 일의 경험치가 쌓여야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저 역시 처음에는 실수를 많이 하고 밤도 많이 샜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밤을 많이 새지 못하는 대신, 실수가 줄었어요(웃음).
Q. 프로페셔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의 원칙은 무엇인가요?
'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라면 배우는 보람을 느꼈으면 좋겠고, 제 강연을 듣는 사람이라면 유익했다고 느꼈으면 좋겠고, 제 자문을 받는 기업이라면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서 학생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에 들어간다는 게 조금 의아할지도 모르겠는데, 아무리 작은 발표라도 해 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발표를 듣는 사람의 태도가 발표의 질을 바꾼다는 걸 아실 거예요. 저는 학생과 제가 함께 노력할 때, 수업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저를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고, 동료로서 주체의식을 가지고 수업에 참여하라고 권합니다.
Q. 최근의 성취 중, 은진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건 무엇인가요?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담당했던 학과장 역할을 무사히 마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저희 과에서 두 번째 여교수이고,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은 첫 번째 외국인 교수입니다. 게다가 집이 멀고, 아이들을 돌보는 데 시간을 많이 쓰다 보니 같은 과 교수들과 친분을 쌓을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학과장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문화 차이나 경험 부족으로 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학과장을 맡은 동안,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는데요. 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내용과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어요. 해결책도 공론화해서 모든 과 구성원이 피드백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가능하면 문서를 남겨서 다음 학과장이 참고할 수 있도록 했죠. 이렇게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학과 사람들과 더 친해졌고,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인사를 받아서 더 보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 공영 라디오방송에 여성의 컴퓨터 관련 학업과 직업 참여를 높이기 위한 대담에 참가했을 때입니다. 라디오 호스트와 같이 패널로 참가한 사람들과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에서 세번째로 서있는 분이 지금 매우 유명해진 블랙 걸스 코드(black girls code)의 창시자, 킴벌리 브라이언트(Kimberly Bryant)입니다. 행사 링크를 첨부합니다. ⓒ정은진
Q. 은진님은 뭘 할 때 행복감을 느끼세요?
무척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아이가 저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제 수업을 들은 학생이 새로운 지식을 배웠다는 게 보일 때, 제가 지도한 학생이 좋은 성과를 냈을 때, 제가 쓴 논문을 읽고 좋았다는 말을 들을 때, 좋은 습관을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 좋은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을 때, 맛있는 거 먹을 때 정말 행복합니다(웃음).
Q. 일과 육아를 하며 생긴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사람의 뇌는 부정적인 것을 더 잘 기억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일부러 노력하지 않으면 힘든 일과 부정적인 기분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해요. 실제로 살아가면서 '아주 기쁜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폴더를 만들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이메일을 복사해두고 힘들 때 열어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반나절 정도는 미래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합니다. 재미있는 책을 읽거나 노래를 하거나, 멍하니 유튜브 영상을 보기도 해요. 코로나 이전에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기쁨 중 하나였어요.
Q.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요즘, 일 또는 육아에서 생기는 어려움이 있나요?
가족 외의 누군가에게 육아와 집안일을 도움받을 수 없다는 것과, 남편과 제가 교대로 일을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아이들은 계속 집에 있는데, 집안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으니 남편과 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아이를 보고 한 사람은 일을 했거든요. 각자 주당 40시간씩 일을 하려면 밤늦게 혹은 주말에 일하는 걸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남편과 교대로 육아를 하니 서로 대화가 없어지다시피 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요즘은 집안일은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등 기계에 많이 의지하고, 식사를 위해 배달을 자주 시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저녁에 아이들을 재운 다음 남편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요. 물론 그만큼 주말에 일을 더 해야 하지만요.
제가 겪은 어려움은 저만의 고충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코로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정말 크잖아요. 처음에는 아웃소싱을 할 수 없게 되니까 아웃소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이 있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 모두 육아로 인해 일을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이 있는 계층은 그렇지 않은 계층보다 재택근무를 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차이가 있었죠. 지금은 온라인 수업 도우미를 고용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 저소득층과 다른 계층들 간의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미국은 계층 간의 격차가 큰 게 사회적 불안 요소 중 하나에요. 코로나로 인해 그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죠. 단기적으로는 소득 차이에서 오는 사회의 불안이 걱정스럽고, 장기적으로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계층 간 격차가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도 걱정이 됩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게 쉬워져야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어요. 언젠가는 일하는 부모들을 위한 마음의 안식처를 만들어 운영하고 싶습니다. ⓒ정은진
Q. 아이를 키우면서 달라진 생각이나 삶의 철학이 있나요?
아이를 낳기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사회의 역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양육이 쉬워지기 전에는 결코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양육을 쉽게 만들려면 주위 사람들의 온정보다,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일이 훨씬 많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 안정적인 보육환경을 제공하는 것, 누구나 평등하게 좋은 교육 환경을 누리는 것들은 개인의 희생만으로는 어려운 일이에요. 예를 들어 친정어머니의 노후를 갈아 넣고, 조부모님의 노후 자금을 써서 가능한 일이라면 아이를 낳는 것도, 키우는 것도 다 어려울 수밖에 없잖아요. 개인의 희생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모두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요소도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희생을 대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의 지원이 어떤 형태여야 할지 늘 고민하게 됩니다.
Q. 아이 키우는 엄마가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회적 변화를 제안한다면요?
아이를 양육하는 게 쉬워져야 해요. 이건 일하지 않는 부모에게도 마찬가지인 이야기입니다. 부모 중 한 사람만 일을 한다고 해서 그 가족에게 양육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한 번은 제 지인이 길에서 꼼짝 못 하는 사람을 응급실에 데려다준 적이 있는데, 남편이 지방에 파견 간 사이에 허리를 크게 다친 아이 엄마였어요.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사이에 병원에 가려고 나왔는데 너무 아파서 병원까지 가지도 못 했던 거죠.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했지만, 그 엄마는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간단한 치료만 받은 채 절뚝거리며 돌아갔다고 해요. 저도 제가 출장을 가야 하는데, 남편이 아프다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힘들 거예요.
누구나 자기 소득 수준에 맞는 비용을 지불하고,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해요. 이건 아이가 학령기에 접어든 이후에도 마찬가지죠.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에만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많이 생기거나, 혹은 아이가 하교 후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더 많은 부모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Q.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상담사 자격증을 따서 일하는 부모들이 맘 편히 찾아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어요. 제가 빵과 커피, 차 등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같이 '오늘의 디저트 세트'를 먹으면서 부모는 저와 이야기하며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그동안 아이는 부모와 조금 떨어진 공간에서 놀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제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봐줄 만큼 자라면, 가족사업으로 시작해볼까 합니다(웃음).
Q. 마지막으로 은진님에게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난 반년을 돌아보면 무척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무척 짧았던 것 같기도 한데요. 지금은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나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갈 수 있게 될지 몰라서, 막막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도 왼발, 오른발을 차례로 내딛다 보면 우리 모두 건강하게 이 길고 구불구불한 터널의 끝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생각보다 긴 터널이지만, 언젠가는 끝이 있을 테니 힘내라고 전하고 싶어요!